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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독과점의 상업정책을 개혁하다.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  sch-uni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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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3.26  14: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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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중국대륙을 지배하던 조선 후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유교문명을 재정립하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정조는 피폐해진 민생을 챙기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을 통해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개선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백성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이용후생은 화폐경제가 보편화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상업이 중요시되던 18세기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조선시대의 상업정책은 물자의 수급뿐만 아니라 물가를 안정시키고 관련 세금을 적절하게 부과함으로써 백성들의 편안한 삶과 부강한 나라를 지향했다. 조선 초기에는 상거래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 권한을 시전상인들에게 부여했다. 그들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며 장사를 했기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난전 상인들이 증가하면 상업상의 유통질서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에는 시전 상인들의 상권이 공고해졌고, 난전 상인들을 엄하게 규제하는 행위와 시전 상인들의 독점권으로 인한 부작용인 도고(독과점) 문제는 상업상의 유통질서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건국 초기에 상업유통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시행된 시전 상인 육성책이 조선 후기에는 난전 상인들의 지나친 규제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한 것이다. 시전 상인들의 횡포로 인해 한양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생활 물가가 폭등하였고, 난전 상인들에 대한 탄압은 사회불안을 증폭시켰다. 

   

<채제공 초상>, 출처 : 국립부여박물관

당시 좌의정 채제공은 난전을 금지하고 시전 상인들에게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을 지적하였다. “우리 나라의 난전을 금하는 법은 오로지 육전이 위로 나라의 일에 수응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익을 독차지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빈둥거리며 노는 무뢰배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스스로 가게 이름을 붙여 놓고 사람들의 일용품에 관계되는 것들을 제각기 멋대로 전부 주관을 합니다. 크게는 말이나 배에 실은 물건부터 작게는 머리에 이고 손에 든 물건까지 길목에서 사람을 기다렸다가 싼값으로 억지로 사는데, 만약 물건 주인이 듣지를 않으면 곧 난전이라 부르면서 결박하여 형조와 한성부에 잡아넣습니다. 이 때문에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간혹 본전도 되지 않는 값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팔아버리게 됩니다.”

1791년(정조 15) 1월 25일에 단행된 신해통공辛亥通共은 시전의 상권 독점을 막고 난전의 활성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시 육의전이란 정부에서 구매하는 주요 물품을 취급하는 대형 상점으로서 입전立廛, 면포전綿布廛, 면주전綿紬廛, 포전布廛, 저전紵廛, 지전紙廛을 의미한다. 신해통공 이후 저잣거리의 난전 상인들은 육전(육의전) 이외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이 장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정조는 1791년(정조 15) 2월 12일에 신해통공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논의하며 채제공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후 정조는 신해통공의 후속조치로서 다음과 같이 전교하였다. “대신이 아뢴 것도 여러 가지 점포와 난전을 모두 철저히 금지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중에서 일상생활에 가장 긴요한 물품을 취급하는 점포에 대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다시 더 헤아려서 속히 이 폐단을 바로잡으라. 난전을 금지한다 하더라도 사적으로 도거리 장사를 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다시 적절한 방법을 강구해서 조정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

결국 신해통공은 시전의 불만을 적절하게 잠재우며 난전의 애로사항을 부분적으로 해결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국가에 정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시전 상인들의 폐단이 있다 하더라도 난전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울러 대동법 시행으로 인해 국가로부터 대동미를 받고 물품을 납품하던 공인들의 부작용도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특히 독과점에 의한 물가 폭등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평시서는 시전 중심의 상업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상업환경의 변화로 인해 그 기능이 조정되었다. 평시서는 권세가와 결탁된 시전의 독과점 폐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해 한양 주민들의 생활고를 해소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금난전권 폐지를 가능케 한 신해통공의 발효는 한양을 중심으로 상업 활동이 급성장하던 시대상황을 반영한 실용적인 조치였다. 정조대에는 난전뿐만 아니라 시전의 수도 크게 증가하였는데, 지방과 달리 한양에서의 상업활동은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에 상업이 발전하는 데는 화폐경제의 발전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대동법이 도입됨으로써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조달하던 공인들도 국가의 물품 조달과 유통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1천여 개의 장시場市가 출현하여 전국적인 상품유통망이 형성됨으로써 시전 상인과 구별되는 사상私商들도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산시켜나갔다.

유교적 권위주의와 부정부패, 그리고 신분차별에 따른 부작용을 극복하고 백성들의 풍요로운 삶을 갈망했던 정조의 개혁정치는 오늘날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당시 기득권 세력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급격한 정치환경의 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위기상황이었다. 이처럼 개혁이란 변화를 갈망하는 세력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 간에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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