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으로 사도세자가 역모를 도모한다는 유언비어가 궁궐에 퍼지면서 영조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창덕궁에 나아가 선원전에 전배한 후 사도세자의 대기명령을 풀어주고 동행하여 휘령전에 예를 행하도록 하였으나 세자가 병을 일컬으면서 가지 않자, 영조는 도승지 조영진을 특파하고 다시 세자에게 행례(예식을 행함)하기를 재촉하였다.
영조가 행례를 마치고, 세자가 뜰 가운데서 사배례를 마치자, 임금이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하교하였다. “여러 신하들 역시 신의 말을 들었는가? 정성왕후께서 정녕하게 나에게 이르기를, ‘변란이 호흡 사이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임금은 협련군에게 명하여 궁전문을 4, 5겹으로 굳게 막도록 하고, 또 총관(무관직) 등으로 하여금 배열하여 시위하게 하면서 궁의 담쪽을 향하여 칼을 뽑아들게 하였다. 영조는 세자에게 명하여 땅에 엎드려 관을 벗게 하고, 맨발로 머리를 땅에 조아리게 하고 이어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전교를 내려 자결할 것을 재촉하니, 세자가 조아린 이마에서 피가 나왔다.
세손(정조)이 들어와 관과 포를 벗고 사도세자의 뒤에 엎드리니, 임금이 안아다가 시강원으로 보내고 김성응 부자에게 지키도록 하고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은 칼을 들고 연달아 차마 들을 수 없는 전교를 내려 사도세자의 자결을 재촉하니, 동궁이 자결하고자 하였는데 춘방(세자시강원)의 여러 신하들이 말렸다. 이후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을 삼는다는 명을 내렸다. 사도세자가 곡하면서 다시 들어가 땅에 엎드려 애걸하며 개과천선하기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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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초상화, 19세기 초에 제작됨, 작자미상
서울 은평구 구파발 사신당에 봉안된 사도세자 초상화,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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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영조가 사도세자를 깊이 가두라고 명하였는데, 세손(정조)이 황급히 들어왔다. 임금이 빈궁과 세손 및 여러 왕손을 좌의정 홍봉한의 집으로 보내라고 명하였다. 결국 부왕의 명에 의해 사도세자는 1762년(영조 38) 윤5월 21일에 뒤주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왕세자의 비극을 상징하는 임오화변은 벌어져서는 안 되었던 사건으로서 성군을 꿈꾸었던 영조의 치적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인 후 ‘그리워하며 애도한다.’는 의미가 담긴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영조는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어 신경정신증상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녔고, 간신들의 속삭임에 눈이 멀어 사도세자를 죽이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사도세자처럼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세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리 사도세자의 잘못이 크다 하더라도 부왕이 왕세자를 무더운 날씨에 비좁은 뒤주에 가둬 죽이는 잔인무도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군주의 제일 덕목은 인仁이다. 인은 사랑이며 아랫사람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휴머니즘을 뜻한다. 만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임금이 왕세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행위는 휴머니즘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영조를 군사君師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