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후 정국은 소용돌이쳤다.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되면 왕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한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은 세손(정조)이 보위를 물려받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았을 뿐만 아니라 세손을 죽이려 했다. 장안에는 ‘팔자흉언’이라는 괴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역적지자 불위군왕逆賊之者 不爲君王. 처형당한 사도세자의 아들(정조)이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문이었다. 팔자흉언은 『영조실록』이나 『정조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았을 만큼 왕권의 정통성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정조가 즉위하는 과정은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노론 벽파는 호시탐탐 세손(정조)을 살해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고, 세손이 즉위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영조를 괴롭혔다. 그러나 영조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신하들을 다독이며 세손에게 보위를 물려주었다.

정조는 즉위하면서부터 정적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1776년(즉위년) 3월 10일 임금은 빈전 문밖에서 대신들을 소견하고 윤음을 내렸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선대왕께서 종통의 중요함을 위하여 나에게 효장세자를 이어받도록 명하셨거니와, 전일에 선대왕께 올린 글에서 ‘근본을 둘로 하지 않는 것’에 관한 나의 뜻을 크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예는 비록 엄격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나, 인정도 또한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향사(제사)하는 절차는 마땅히 대부大夫로서 제사하는 예법에 따라야 하고, 태묘에서와 같이 할 수는 없다.”

동년 3월 20일 정조는 사도세자의 존호를 추후하여 올려 ‘장헌’이라 하고, 수은묘의 봉호를 ‘영우원’이라 하였으며, 사당을 ‘경모궁’이라 하였다. 이어서 존봉하는 의절을 송나라 복왕의 고사에 따라 마련하고, 봉원도감을 추숭도감에 합쳐 설치하도록 명하였다. 시호를 의논한 여러 신하들을 소견하고, 정조가 말하였다.

“선조에서 시호를 ‘사도’라고 하신 것은 성스러운 뜻이 있으신 것인데, 지금 내가 오직 세상이 끝나는 슬프고 사모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 뿐이다. 옛적부터 제왕들이 시호를 정하던 규정을 간여하려 하였음을 내가 일찍이 그르게 여겨 왔다. 만일 혹시라도 지나치게 아름다움이 넘치도록 한다면 어찌 나의 본뜻이겠느냐? 여러 신하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이후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했던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1776년(즉위년) 3월 27일 동부승지 정이환이 상소하여 홍봉한의 죄상을 논하였다. “지난번 사헌부 대사헌이 간략히 적은 상소문을 올려 정후겸의 죄상을 논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지금 그만둘 수 없는 정론입니다만, 죄가 이보다도 크고 악이 이보다도 포악하여 전하께서 반드시 보복해야 할 원수이면서 온 나라가 반드시 죄를 밝혀 벌을 주어야 할 역적이 있습니다. 오직 홍봉한은 천만 가지 죄악을 다 갖추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크고 가장 극악한 것을 말한다면 곧 임오년(1762)에 범한 죄인데, 전 참판 김귀주의 상소에서 말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동부승지 정이환의 상소에는 사도세자가 처형당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홍봉한의 죄상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사용된 뒤주는 홍봉한이 급작스럽게 멋대로 올렸습니다. 그러하지 않았다면 선대왕께서 어떻게 그 ‘뒤주(일물)’가 어느 곳에 있었던 것인지를 아셨겠습니까? 우리 전하께서 한가로이 홀로 계실 적에 생각이 이에 미치신다면 필연코 망극한 애통을 스스로 그만둘 수 없게 되실 것입니다. 이는 충신과 의사들이 팔을 걷어붙이며 이를 갈게 되는 일입니다.”

사도세자 죽음에 연루된 자들을 처형하였다.(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 4월1일)

정조는 상소문을 검토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문을 열었다. “위 대목의 일은 어찌 오늘날에 임금과 신하가 차마 제기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신묘년(1771) 2월 7일에 선대왕께서 우시며 나에게 말하기를, ‘앞날에 조정의 신하 가운데 ‘일물一物’이라는 두 글자를 들어 너에게 진달하는 사람은 단지 나에게만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 아니라 또한 너의 순수하고 정직한 신하도 아닐 것이다. … 바깥의 알지 못하는 자들은 홍봉한이 나를 도운 것으로 여기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라고 하셨고, 손을 잡으시며 간곡하게 말씀을 하여 나에게 알고 있도록 명하셨기에, 내가 그때 눈물을 흘렸으며 책 속에 지금까지 간직해 두고 있다.”

정조는 표면적으로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연루된 자들을 처벌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권력의 속성에 길들여진 관료들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연루된 자들을 처벌해야 함을 지속적으로 간언하는 형국은 지속되었다. 심사숙고 끝에 정조는 1776년(즉위년) 4월 1일 사도세자의 죽음에 연루된 자들, 즉 이덕사·박상로·조재한·이일화·최재흥·유한신·이동양 등을 처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