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 12월 6일에는 단군·기자와 신라·고구려·백제·고려 시조의 왕릉들을 수리하여 고치는 절차에 대해 하달하였다. 1786년(정조 10) 8월 9일에는 단군의 묘소를 수리하고 수호할 호구를 두었는데, 승지 서형수가 임금에게 아뢴 내용이 인상적이다. “단군은 우리 동방의 맨 먼저 나온 성인으로서 역사에 편발개수編髮盖首의 제도를 제정하였다고 일컫고 있습니다. 군신 상하의 분수와 음식과 거처의 예절을 모두 단군이 창시하였다면 단군은 동방에 있어서 사실 세상이 끝나도록 잊지 못할 은택이 있는 것이니, 모든 것을 극도로 갖추어 높이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조는 서형수의 의견을 경청한 후 하교하였다. “비록 믿을 만한 증거의 흔적이 없으나, 고을의 옛 노인들이 가리키는 곳이 있다면 병졸을 두어 수호하거나 돌을 세워 사실을 기록하는 등 근거할 수 있는 사례가 하나뿐만이 아니다. 더구나 이곳의 사적이 읍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석을 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호하는 사람까지 없으니, 매우 흠결된 일이다. … 그 관찰사로 하여금 순행할 때에 몸소 살펴보게 하고 무덤 가까이 사는 민호를 수호로 정하고 본 고을 수령이 봄·가을로 직접 살피게끔 규식을 정하도록 하라.”

그는 단군 유적을 성역화하고 제사지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빛낸 인물들의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와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는 동안 우리 역사를 빛낸 영웅들의 위대함을 제대로 알리며 재평가하는 작업은 오늘날의 지도자들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학자군주로서 군사를 자임한 정조는 “역사를 잃어버린 나라는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청나라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국가로 자리매김하는 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매진하며 정조는 조선의 문화적 역량이 청나라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했다. 당시 조선이 자주국가로 나아가려면 국방력이 뒷받침되어야 했기에 군제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북벌을 추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정조는 조선을 빛낸 영웅들에 대한 재평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792년(정조 16) 7월 25일 정조는 충무공 이순신과 충민공 임경업의 자손을 황단 망배례에 참여시켰다. “나라를 다시 세워준 황제의 은혜를 길이 생각하고 우리나라 충신에게 미치게 하여 전수篆首로 써서 충무공 이순신의 뛰어난 공적을 표창하고자 하였다.” 1792년 8월에는 『충무공이순신전서』의 편찬을 지시하였고, 임진왜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들 중 한 명으로 인식되던 이순신장군을 전란으로부터 조선을 구한 대표적인 영웅으로 재평가하였다. 이밖에도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처형당한 의병장 김덕령의 명예를 회복시켰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대항하다 순국한 충민공 임경업 장군의 재평가도 단행하였다.

무엇보다도 조선이 일류국가로 나아감에 있어서 정조는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부각시키며, 한민족의 역사를 빛낸 위인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성역화를 중시했다. 오늘날에도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고조선을 바라보는 역사 인식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수천 년 전의 역사를 온전히 과학적으로 증명하며 역사를 기술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고대사를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검증하며 기술할 수는 없다. 고조선의 단군신화는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단군신화를 아직까지도 맹신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 중국이나 일본 학자들이 왜곡시켜 놓은 우리 역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기보다, 잘못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으며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체계화하는 데 앞장서야만 대한민국은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