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교육에 전심전력한 선왕의 보살핌과 자신의 천부적 재능,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계발 덕에 정조는 성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모름지기 성군이란 천부적인 재능과 빈틈없는 자기계발 및 체계적인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탄생할 수 있다. 영조는 『소학』과 『동몽선습』을 중심으로 세손(정조) 교육을 시켰는데, 사도세자가 죽고 세손이 왕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한 후에는 『대학』 교육을 중시했다.

조선의 왕세자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이루어졌는데, 양반가 자제의 교육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체계적이었다. 신하들과 학문을 논하는 경연에서 영조는 사도세자가 잘못했을 때는 공개적으로 혼내곤 하였는데, 세손(정조)에게는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잘한 것을 칭찬하는 태도를 취했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엄격했던 자신의 교육방식을 후회하였고, 세손(정조)에 대해서는 엄격함보다는 사랑으로 훈육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영조는 탕평책을 통해 극심한 정치적 대립보다는 화합의 정치를 꿈꾸었지만, 지지기반이었던 노론을 중심으로 하는 탕평정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영조의 통치기반이었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세력은 정조가 즉위하기 전부터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세자를 희생시킨 정적들은 세손(정조)이 왕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이려 했다. 선왕인 영조가 경종 독살설에 휘말려 즉위 후에도 많은 고초를 겪었던 것처럼, 처형당한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불명예를 극복해야 하는 정조의 여정은 녹녹치 않았다. 정조는 세손시절에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는데, 때로는 다리 뻣고 잠자리에 들지 못할 만큼 신변보호를 걱정해야 했다.

정조는 아버지를 죽인 영조를 미워하며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도 있는 여건이었지만 자기관리에 빈틈이 없었다. 영조를 알현할 때는 혹여 임금께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걱정하실까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무예를 연마하며 건강관리와 자객의 침입에도 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손(정조)에게 큰 위기가 닥쳤다. 정적들은 ‘팔자흉언’, 즉 역적지자 불위군왕逆賊之者 不爲君王을 장안에 퍼뜨렸다. 죄인(사도세자)의 아들(정조)이 임금이 될 수 없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인 행위를 후회했고, 묵묵히 세손(정조)에게 보좌를 물려주기 위한 절차를 빈틈없이 진행했다.

영조가 세손을 보호하자 적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1775년(영조 51) 11월 20일 영조와 세손(정조) 및 대신들 앞에서 홍봉한(사도세자 장인)의 동생인 홍인한은 세손에게 “동궁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 판서나 병조 판서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조정의 일까지도 알 필요 없습니다.”라는 삼불필지설三不必知說을 강조하였다.

당시 홍인한은 영조의 서녀인 화완옹주의 양자였던 정후겸과 공동전선을 펼쳤는데, 이들은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세손을 보호하던 홍국영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1776년 3월 10일에 즉위하면서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관련자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정국은 소용돌이쳤다. 1762년(영조 38) 윤5월에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임오화변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정조는 영조가 세운 의리를 강조했고, 이후로는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에 대해 언급하는 자들을 엄하게 처벌할 것임을 천명했다.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 3월 10일 신사 4번째 기사,  영조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한 기사.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