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숙종이 추구했던 환국정치의 부작용을 극복하고자 영조가 도입했던 탕평책은 오늘날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영조는 미흡하나마 왕권 강화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노론 중심의 탕평책으로 말미암아 신권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노론의 견제 속에서 즉위한 정조는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선왕 때보다 공고한 왕권 강화를 이룩했지만, 영조시대와 달리 특정 당파가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각 당파간의 대립과 갈등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늘날 민주화된 서구사회와 대한민국에서는 정권을 잡은 정당에서 대통령이나 수상을 배출하고 중앙정부의 주요 보직을 대부분 차지하는 통치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통치방식은 정조의 준론탕평보다는 영조의 완론탕평에 가깝다. 왕의 아들이 보위를 물려받는 왕권국가와 국민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국가의 통치방식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불완전하고 가변적이어서 정의와 공정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당시대의 상황논리를 무시할 수 없다.

정조가 세종 못지않게 성군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18세기의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낙후된 관행들을 개선하며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임기간 중에 비범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하며 왕권을 바로 세우고, 유능한 인재의 발굴과 교육에 전념하며 적재적소에 우수인재를 배치함으로써 조사사회가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조선 후기의 혼돈 못지않은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남북통일, 그리고 초일류국가로 도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와 경제와 교육 등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정치의 선진화만으로 초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진적인 한국정치가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협력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보다는 서로 싸우며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행태는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숙종의 환국정치가 비판받는 이유는 왕권 강화를 위해 임금이 앞장서서 붕당간의 싸움을 부채질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조선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유사한 면적을 가진 영국이 아메리카, 인도, 호주, 아프리카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19세기에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왕이 솔선수범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부분적으로 양보하며 전 국민의 단합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실천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시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나라가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일류국가로 발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