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백성들은 다양한 종류의 세금을 납부했으며, 국가는 국토방위와 백성들을 구제하는 목적 외에도 다양한 비용 지출을 중앙정부에서 통제하였다. 조선시대의 국가재원은 전세, 군역, 공납, 잡세, 잡역 등으로 마련되었다. 당시의 육상과 해상 교통체계는 전국 각지에서 거둬들인 곡물이나 물자들을 한양으로 수송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운송비용도 큰 부담이었다. 또한 운반과정에서 곡물이 부패하는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국가의 모든 재원을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는 재원과 지방정부에서 관리하는 재원, 그리고 각각의 부처와 왕실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재원을 구분함으로써 국가재정 관리의 효율성을 도모하였고, 국역의 형태로 백성들을 동원하여 각종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재정지출을 절감하였다. 대동법은 공물이나 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는 납세제도이며, 균역법은 군역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시행한 조치였다.
세수가 줄어든 중앙과 지방의 관청들은 독자적인 수입 증대를 위해 환상을 활용하였다. 환상이란 백성들에게 봄철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에 환수하는 제도였는데, 18세기 이후에도 고율의 이자를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부작용이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이를 관리하던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영조는 1761년(영조 37) 11월 25일 대동법의 실태를 점검하며 백성들이 착취당하지 않는 정책을 주문하였다. “신하들과 방백 수령은 정성껏 그 직무에 부지런히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때와 더불어 양기 회복을 맞이하게 하라. 금년의 농사는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크게 어긋났으니 내년 봄 농사에 부지런히 한 뒤에야 거의 넉넉하게 될 것이다. 무릇 모든 백성을 사역하는 정책은 일체 금지하고, 방죽을 쌓는 역사는 백성의 폐단이 가장 심하니, 봄 이후 가을 전에는 내수사와 모든 각사의 이런 청을 일체 금지하여 조금이나마 백성의 힘을 펴게 하며, 서울과 외방에 크고 작은 백성을 침탈하는 정책도 엄하게 금지하여 하늘을 본받아 영을 행하는 뜻을 보이라.”
정조대에는 화폐 보급의 확대와 상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조선의 봉건적 경제구조는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무너진 국가재정을 재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대동법과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하면서도 중앙 재정의 확충 노력을 병행하였다.
1792년(정조 16) 2월 1일에 경상도 관찰사 정대용이 대동법에 관해 상소하니, 정조는 더욱 철저한 일처리를 명하였다. “백성의 형편을 알 만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뒤늦게 청하는가. 대동미는 순전히 돈으로 바치는 것을 허락한다. 전세에 대해서는 관계된 바가 매우 중한데, 경의 상소 중에서는 이 또한 낱낱이 거론하지 않았으니 백성을 위하는 일을 어느 것은 하고 어느 것은 하지 않겠는가. 도내에 목화 흉년이 더욱 심한 고을은 특별히 순전히 돈으로 바치거나 혹은 수량을 나누어 돈으로 대납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처럼 대동미는 지역의 특산물로 세금을 납부하는 폐단을 근절하기 위해 쌀로 납부하도록 조치한 것인데, 일부 지역에서는 대동미조차 납부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쌀농사를 짓지 않는 지역에서는 쌀로 세금을 납부하려면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쌀을 구입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부작용이 수반되었기에 일부지역에서는 쌀 대신 포나 돈으로 납부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본래 대동법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경기도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경기선혜법을 필두로 하여 100여 년 동안 전국적으로 6도에서 시행되었다.
이 조치는 납세자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필요한 물자들을 쌀이나 포 등으로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시장의 물가와 정부에서 책정한 가격 간의 괴리 등으로 인해 부작용도 발생하였다. 18세기 이후 대동미를 주관하던 선혜청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대동 및 균역과 관련된 재정수입을 담당하는 기구로 확대 개편되었기 때문이다. 균역법의 실시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정조는 궁부일체론을 토대로 하여 왕실재정의 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사적 성격으로 운영되던 왕실 재정을 호조가 흡수하거나 통제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고, 내수사의 운영에 있어서 중앙의 행정기구와 연동시켜 왕실 재정의 사적 지출을 통제하고 진휼 등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세수 총액을 미리 정해놓고 각 지방이나 기관에 할당하는 비총제를 적용함으로써 ‘궁방(宮室과 宮家의 통칭) 면세결(세금을 면제하던 토지)’과 노비신공(국가나 주인에게 바치는 물품)의 총액을 설정함으로써 예산규모를 적절하게 통제하였고, 국가의 관료제와 군현제적 운영방식에 왕실재정을 연동시켜 업무별로 해당 관청의 통제를 받도록 조치하였다.
왕실 재정의 개혁도 관료들과 일반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혁 못지않게 거센 저항이 뒤따랐지만, 정조는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능가하는 삶의 자세와 실천으로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는 왕족들에게 지급하던 토지인 궁방전과 백성들의 강제 노역을 개혁했으며, 궁궐에 근무하던 궁녀들의 수를 절반으로 줄여 왕실 재정을 절약하며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삶을 실천했다.
위계질서를 중시했던 조선사회에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인해 곳곳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관료들은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바꾸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조는 성왕론을 내세우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만백성을 책임져야 하는 군주가 솔선수범하는 삶을 실천해야만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는 통치철학을 중시했던 정조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중시하며 백성들과 함께 잘 사는 대동사회를 염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