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원은 왕릉의 품격에는 부족할 수 있으나 세자나 대군의 묘터로는 손색이 없는 곳에 조성되었지만, 정조는 풍수지리상으로 길지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정조는 풍수지리와 정치적인 이유로 천장을 단행하였는데, 󰡔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홍재전서󰡕 등에서 그 연유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흉지에서 길지로 이장한다는 효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개인적인 흉사를 극복하기 위한 풍수적 대안이라는 논리를 제시하며 영우원보다 융릉(현륭원)이 풍수적으로 뛰어난 자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를 통해 정조는 무기력해진 왕권을 바로세우기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사도세자의 영우원이 수원부의 화산에 위치한 현륭원(융릉)으로 이장하는 데는 13년의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1789년(정조 13) 10월 16일 현륭원의 공역이 완공되었다. “나는 원園을 옮기는 한 가지 일에 대하여 오랫동안 경영하고 조처한 것이 있는데, 반드시 비용을 덜 들이고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신연(신주를 모신 가마)과 수레 및 촉롱(촛불을 켜드는 초동)은 정련(임금이 거둥할 때 타는 연)을 쓰고, 신연을 호위하고 따르는 군대와 의장은 법가군(임금 수레 호위군)을 썼으며, 계원啓園할 때에는 자문감의 군사를 쓰고 상여 메는 사람과 상여를 끌어당기는 시민, 잔디를 떠내는 사람 및 각종 운반을 맡은 군정들도 다 내탕고에 비치해 둔 돈을 꺼내어 그 양식과 비용을 후하게 주었으며, 의복까지도 자체로 마련하는 것을 금하고 역시 내탕고와 호조의 비용으로 만들어 주게 하였다.”

영우원을 현륭원으로 이장하고 정조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듬해인 1790년(정조 14) 1월 1일에는 원행에 관한 하교를 하였다. “천봉을 한 뒤에 처음으로 신정을 맞게 되니, 어린애나 다름없는 그리움이 더욱 깊어진다. 19일에 출궁하여 생신에 맞춰 현륭원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다가 수원의 새 고을에 머무는 날에 수원 등 세 읍의 유생과 무사들에게 과거를 설행設行하여 인재를 선발하겠다. 이로부터 해마다 빠짐없이 원행을 할 것이다. 갖가지 폐단을 덜어주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강구하여 정한 규정이 있으니, 그대로 거행하여 털끝만큼이라도 폐단을 끼치지 않도록 서울과 외방에 조치하라.”

10여 년간 대리청정하다 부왕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비극을 지켜보며 자란 정조는 부친의 명예회복을 다짐했지만,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숭하여 종묘에 배향하면 그의 명예회복은 마무리되지만 정조는 영조의 유명(유언)을 저버릴 수 없었다. 마침내 1790년(정조 14) 2월 9일 정조는 현륭원에 전배하고 작헌례를 행하였다. 부친의 묘소인 현륭원에 친히 참배하고 잔을 올리는 제례를 통해 효의 중요성을 만백성에게 각인시켰다. 그는 걸어서 원 위로 올라가 좌우 산기슭을 두루 살펴보았고, 현륭원과 관련하여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겼다. 효를 실천함에 있어서 수원부의 백성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효치가 빛을 발할 수 없음을 경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