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양의 궁궐에서 출발하여 수원부의 현륭원을 참배하려면 한강을 건너야 했다. 1789년(정조 13) 12월에 정조는 한강에 부교를 놓는 일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주교사의 설치를 명했다. 배다리에 대한 큰 그림은 정조가 제시하였고, 설치를 위한 실무책임은 정약용이 담당하였다.

마침내 1790년(정조 14) 7월 1일 한강을 편리하게 건너기 위한 배다리의 운영 지침인 <주교지남>이 완성되었다. 정조는 배다리에 관한 기존의 운영방식을 참고하여 안정성과 설치의 용이성, 비용 절감 등을 고려하여 지형, 물의 넓이, 배의 선택과 수효 및 높이, 종량縱梁, 횡판橫板, 잔디를 까는 일, 난간, 기구의 보관, 대오의 결성, 상벌, 배의 수집 등에 대한 운영지침을 제시하였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는 1789년(정조 13) 이후 해마다 이루어졌다. 현륭원 참배를 위해 수원부로 이동하면서 임금은 백성들의 삶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도 만전을 기했다. 1792년(정조 16) 1월 24일 현륭원으로 행차하던 중 정조는 갈현에서 촌노에게 근심을 물었다. 임금이 현륭원에 행차하는 도중 갈현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서 초상軺床에 앉아 마을 노점의 노인들을 불러서 고통스러운 일을 물어보았다.

풍수지리에도 해박했던 정조는 동년 1월 25일 현륭원을 참배하고 동행한 대신들에게 대명당터에 사도세자를 모시게 된 연유를 털어놓았다. “내가 풍수지리에 대해 비록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1백 리의 평야에 이러한 형국이 이루어졌으니 청룡과 백호가 둘러싼 것과 조·대산의 밝고 수려한 모습은 비록 평범한 사람의 안목이라도 모두 알 수 있다. 이곳은 효종 때에 표시하여 둔 곳인데, 지금 원침園寢이 되었으니, 실로 하늘이 준 것이지 나의 힘이 아니다. 28년 동안 옛 능원에 봉안하였다가 다행히도 천지신명의 도움을 힘입어 내 마음에 여한이 없게 되었으니, 지난 일을 회상하면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다.”

수원화성-팔달문(八達門), 출처:수원시

당시는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변모하는 때였고, 조선에서도 서양의 선교사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정조는 한양에서 정적들과 대립하며 개혁을 단행하기에는 성과 창출이 쉽지 않았기에, 수원을 한양에 버금가는 신도시로 개발하는 청사진 제시했다. 개혁도시 수원이 성공하려면 튼튼한 안보와 상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했다. 1793년(정조 17) 1월 12일 임금은 수원부를 화성으로 바꾸고 부사를 유수로 승격시키면서 군영 폐단의 제거를 하유하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을 방문해 보면 적의 침략과 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건립된 성곽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화성이 건립되기 이전까지 조선의 성곽은 읍성과 산성으로 구분되었다. 평상시에는 전국 각지의 읍성을 중심으로 행정적인 업무와 백성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방어하기에 용이한 산성으로 이동하여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읍성 내의 관청 건물들과 백성들이 거주하던 민가들은 약탈당하거나 방화로 인해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농민들은 잿더미 속에서도 한 해 농사를 지으면 어느 정도는 피해를 만회 挽回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읍성 내에 거주하던 상공업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면 화재와 약탈로 인해 사업기반 자체가 붕괴되거나 재기가 불가능한 위기상황에 노출되는 부작용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화성은 읍성과 산성의 장점을 결합하고 국내외 주요 성곽들을 벤치마킹하여 전쟁이 발발해도 생활터전을 버리고 산성으로 대피하거나 피난길에 오를 필요 없이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건립되었다.

1794년(정조 18) 1월에 착공되어 1796년(정조 20) 9월에 완공된 수원화성에는 조선 후기의 사회변화를 주도했던 개혁군주 정조의 원대한 꿈이 깃들어 있다. 팔달산과 평지의 들판에 5.7km의 성곽을 조성하였는데, 조선의 성곽은 물론 중국과 서양의 성곽들을 벤치마킹하였다. 18세기의 최첨단 전투요새였던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돌로 쌓았고, 공격에 취약한 윗부분에는 벽돌로 쌓았는데 석회석으로 벽돌 사이사이의 틈새를 메워 돌로 쌓은 성벽 못지않게 튼튼했다.

화성의 건설 과정에서 인력으로 큰 돌을 운반해가며 성벽을 쌓는 데는 거중기와 녹로를 활용했다. 거중기는 16세기까지의 서양기술을 정리한 『기기도설』을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정약용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화성의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팔달문 등 곳곳의 요충지에는 옹성을 설치하여 방어와 공격의 효율성을 높였다. 성곽 내에는 봉수당 외에도 수십 채의 행궁 전각과 군영이 건립되었고, 행궁 앞쪽의 사방으로 신작로를 개설하였다. 신작로를 따라 시전 상가들과 민가들이 배치되었고, 성곽 밖에는 화성의 경제적 기반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시설들이 개발되었다. 성곽의 서쪽·남쪽·북쪽에 수리시설을 건설하고, 이와 연계된 둔전이 설치되었다. 한양과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도로망과 교량 건설도 신도시 화성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정조의 효치는 현륭원 천봉과 화성 건설에 그치지 않고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찰 건립으로 이어졌다. 그는 왕실의 종친, 고위관료, 승려 및 일반 백성들의 시주를 받아 용주사의 건립 비용을 조달하였다. 이를 통해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의 당위성을 만백성에게 홍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채제공이 용주사 대웅보전의 상량문을 썼고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가 용주사 주련을 썼다. 정조는 용주사에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하사하여 효행의 중심도량으로 삼았고, 유교와 불교의 효는 서로 통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금지하던 천주교(서학)를 견제하는 의도도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