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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유교윤리를 중시한 형벌제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  sch-uni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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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26  22: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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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 후 대명률에 기초하여 형법의 토대를 마련했다. 1485년(성종 16)에 반포된 <경국대전>은 명나라 법률에 기초하여 조선의 지리와 문화적 토대를 고려하여 정립되었다. 유교적 전통은 가족관계를 중시하며,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위계질서가 바로 서지 못하면 사회발전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또한 유교 전통은 법이 도덕보다 우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범죄자를 응징하는 접근보다는 교화를 우선시했는데, 이는 덕치와 예치禮治로 이어진다.

조선사회에서 중시했던 예禮는 국가를 이루는 기본단위인 가족 윤리에서 출발한다. 가족 공동체가 건강해야 하고, 쉽게 붕괴되지 않아야 사회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치를 중시했다. 가족이 해체된 사람들의 불안전한 심리상태는 잠재적으로 억압돼 있던 파괴본능을 자극해 불법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 가족이 지향하는 윤리는 한 집안의 규범이지만, 인간 공동체가 지향하는 윤리와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이 가족과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폭증하는 범죄에 직면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법제도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한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혜들을 추출해낼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체계는 조선시대의 법률 대신 서양 법의 토대 위에 정립되었다. 한국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식 교육제도와 과학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세계사에 빛나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우리의 전통윤리와 법체계를 계승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는 범죄의 판결에 있어서도 유교 윤리를 중시하며 덕치를 실천함으로써 왕도정치의 모범을 보였다. 정조의 범죄 판결 내용을 기록한 『심리록』을 분석해 보면 법에 따른 엄격한 처벌을 선호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조는 유교적 윤리를 중시하며 통치지배 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인간 공동체는 반사회적 행위를 통제해야만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지만 법에 의한 규제만으로 야기되는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시민들은 종교적 또는 윤리적인 가르침을 통해 법적인 처벌을 예방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실천한다. 조선사회의 유교윤리는 위계질서를 존중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다함으로써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덕치의 미덕을 중시했다.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조선의 차별적인 위계질서는 모순투성이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조선을 비롯한 중국대륙과 일본 등지에서 성리학적 가르침과 유교윤리는 문명화된 국가의 이상적인 통치이념이었다.

정조는 대리청정을 시작하던 1775년(영조51) 12월부터 1800년(정조 24) 6월까지 심리한 중범죄 1,112건을 면밀히 분석해 억울한 백성이 없도록 합리적인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는 중범죄를 판결하는 과정에서 유교 윤리를 중시했으며, 법을 엄하게 집행할 때는 매우 신중하게 처리했다. 『심리록』은 범죄가 발생한 군현명, 사건 개요, 관찰사의 조사보고서인 도계, 육조에서 올린 보고서인 조계, 정조의 판결문 등을 기록하였다.

당시는 녹음이나 촬영도구가 부재했기에 사건개요의 정확한 기록이 중요했다. 정조는 자신의 판결에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범죄사건의 발생일자,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사망 원인과 결과 등에 대한 명확한 규명에 집중했다. 또한 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재조사를 요구했고, 고의성이 없거나 우발적인 사건이거나 유교윤리의 차원에서 타당성이 인정되면 감형 판결을 내렸다.

   

심리록((審理錄), 영조대 중죄수 판례 1,112건 기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범죄를 다룬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예리한 칼이나 몽둥이를 활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사망이 이르는 경우가 많고,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총을 사용해 살해하는 예가 많다. 그러나 18세기의 조선에서는 손으로 목을 조르거나 발로 차거나 무릎으로 눌러 죽인 살인사건이 10건 중 7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오늘날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들의 살인도구가 칼이나 총, 약물 투입 등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으나, 조선 후기만 하더라도 살인사건의 7할 정도가 손이나 발을 사용한 단순 살인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정조의 판결은 당시로서는 최선의 결정이었겠지만, 현대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군주는 대법원 판결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임금의 잘못된 판결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미흡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선행을 확산시켜 악행을 줄여나가야 하는데, 징벌 위주의 범죄자 관리는 악행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엄격한 법률로 범죄자를 다루는 접근법은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이해관계가 북잡하게 얽혀있는 인간 공동체에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리서치뉴스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sch-uni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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