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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실리를 추구한 정조의 외교전략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  sch-uni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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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07  08: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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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청나라를 방문하는 관리들은 조선에서 필요로 하는 신지식과 정보를 수집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대륙을 지배하게 되면서 청의 황제를 비롯한 지배계층은 대내외적으로 엘리트 지식인들의 교류에 대해 엄하게 통제하였다. 조선의 사신들은 북경을 방문해도 머물던 관소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통제받았고, 주변 지역을 관광하더라도 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았다.

조선의 대청 외교는 두 나라간의 경직된 외교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청나라 고위관료들과의 비공식적인 교섭을 중시했다. 청의 강희제는 ‘삼번三藩의 난’을 진안하고 정국이 안정되자 조선과의 외교관계에서도 고압적인 태도보다는 양국 간의 우호를 증진시키는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대를 이어 즉위한 건륭제도 조선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중시했다. 18세기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관계는 서로를 신뢰하는 단계로 발전했는데, 청의 건륭제가 조선의 사신들을 특별하게 대우함으로써 조선 지식인들의 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건륭제의 칠순 잔치가 치러진 1780년(정조 4)은 양국 간의 신뢰가 돈독해지는 분수령이 되었다. 건륭제는 청의 주요 행사에 외국 사신들을 초대하였는데, 조선은 해마다 개최되는 연회에 연속적으로 초대를 받아 양국 간의 우호증진을 촉진시켰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한족 출신의 지식인들을 우대하면서도 경계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학문적 소양이 출중했던 조선의 사신들은 청나라 관원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었다. 조선과 청의 교류가 증대될수록 인적 교류는 다방면으로 확대되면서 양국 간의 신뢰구축으로 이어졌다.

   

건륭제(乾隆帝), 출처 : wiki

청나라는 조선의 외교관들을 특별하게 대우했다. 

양국 간의 우호증진은 건륭제의 노력 외에도 정조가 추구한 외교전략의 성과이기도 하다. 정조는 건륭제의 경사에 빈틈없이 사신을 파견하였고, 양국 간의 관계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조선의 대청 외교는 국익을 우선시하며 상호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중시하였다. 당시 조선의 지도층 인사들 중에는 명나라가 지향했던 중화문명을 흠모하며 조선중화주의로 승화시키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8세기의 조선은 청나라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정치이념과 사상적으로는 청나라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중화주의는 명나라의 중화사상을 조선의 관점에서 창조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하지만 명나라가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명나라에 대한 의리에 집착한 사대주의적 접근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정조는 성리학적인 학문 탐구에 있어서도 대학자의 반열에 오를 만큼 뛰어난 군주였지만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조선중화주의에 집착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조대의 조선과 청의 외교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돈독한 신뢰관계가 구축되었다.

조선의 대청 외교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실용적인 접근법, 즉 안민安民과 보국保國을 지향하였다. 비록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중화주의를 강조하며 청나라를 압도할 만한 문화적 소양을 갖추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서양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등지의 다양한 나라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청나라로부터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해야만 했다. 정조는 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일류국가 조선을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과 신기술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조선에서 청나라에 파견된 사신들이 습득한 연행 정보는 정조의 국정운영에 반영되었다. 그의 치밀하고 정교한 대청 외교는 재위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해마다 동지사를 한 차례씩 파견했고, 중요한 의제가 있을 때마다 외교사절을 청나라에 파견했다. 청의 건륭제는 재위기간 중에 70세와 80세의 생일, 그리고 즉위 50주년과 60주년을 맞이했는데 주변국들의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성대한 행사를 치렀다. 청나라는 여러 나라의 사신들을 초청한 행사에서 조선의 외교관들을 특별하게 대우했다.

청나라를 다녀온 조선의 사신들은 정조에게 상세한 내용을 보고해야만 했다. 당시 조선의 사신들이 북경으로 이동하는 경로와 현지에서 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연행록은 조선인들의 신문화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었다. 정조는 서양에서 유입된 천주학이나 천문기술들, 그리고 시간과 날짜를 구분하여 정하는 서양식 역법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정조의 실용주의 외교노선은 그의 최대 업적으로 손꼽히는 수원 화성 건설에서도 빛을 발했다. 조선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김홍도는 청나라에서 체득한 서양화법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시켰고,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의 후불탱화에도 서양화법을 반영하였으며, 그가 북경 일대에서 그려온 중국의 성곽들은 수원 화성 건설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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