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를 치료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지속되었지만, 6월 27일 오후에는 왕실 가족들과 대신들, 그리고 어의들과 지방의 의원들도 임금이 회복될 수 없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당일에도 연훈방 처방에 대한 찬반 의견은 팽팽했다. 연훈방은 종기의 치료에는 효과적이지만 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를 마시게 되면 정신이 더욱 혼미해지는 부작용이 수반될 수 있다. 정조는 인삼 5돈쭝과 좁쌀 미음을 끓여 들여올 것을 명하였고, 탕약도 들여왔으나 마시지 못했다.

잠시 후 정조는 탕약을 몇 모금 마시고 어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양에서 소문난 의원들의 치료에도 임금의 병세가 나아지지 않자, 지방의 소문난 의관들을 찾아보자고 논의하였다. 그는 미움을 몇 숟가락 뜨고 힘겹게 잠자리에 들었다. 온몸에 퍼진 종기에서 흘러나오는 피고름과 고열로 인해 임금의 옥체는 피범벅이 되었다. 온몸이 쑤시고 고열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해 정조는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6월 28일 오전에 좌의정 심환지 등이 아뢰었다. “밤사이에 성체는 조금 어떠하십니까?”

“물시계가 멎은 뒤에 잠을 조금 잤다.” 도제조 이시수가 아뢰었다. “밤사이에 무엇을 드신 것이 있었습니까?” “전혀 먹은 것이 없다.” 정조는 강최현이 인삼을 넣어 조제한 가감내탁산을 몇 모금 마셨다. 임금은 창경궁 영춘헌에서 새로 부임한 좌부승지 김조순, 원임직제학 서정수, 검교직제학 서용보와 이만수를 접견하고 병세가 더욱 위중해졌다.

“이때에 임금의 병세가 이미 위독한 상황에 이르러 이만수가 홍욱호와 강최현을 불러 진맥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이어 약원을 입시할 것을 명하여 약원의 세 제조 및 각신 정대용·김면주·심상규·김근순, 의관 강명길 등과 지방 의관 전 현감 홍욱호·첨정 강최현 등이 앞으로 나가 엎드렸다. 임금이 무슨 분부가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들어보니 ‘수정전’ 세 자였는데 수정전은 왕대비가 거처하는 곳이다.”

이즈음 신하들이 큰소리로 찾아뵈었음을 아뢰었으나 정조는 대답하지 못했다. 관료들과 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비상상황이었다. 도제조 이시수의 뜻에 따라 왕명을 의미하는 탑교를 썼다. “인삼 5돈쭝과 좁쌀 미음을 먹어야겠으니 계속 끓여 들여오라.” “청심원 두 알을 먹어야겠으니 들여오라.” “소합원 다섯 알을 먹어야겠으니 생강을 끓인 물에 타서 들여오라.” 좌의정 심환지 등이 앞으로 나가 큰소리로 신들이 대령하였다고 아뢰었으나 정조는 대답이 없었고, 인삼차와 청심원·소합원을 계속 올려드렸다.

왕대비는 승전색을 통해 분부하였다. “이번 주상의 병세는 선조 병술년(1766, 영조 42)의 증세와 비슷하오. 그 당시 드셨던 탕약을 자세히 상고하여 써야 할 일이나 그때 성향정기산을 복용하고 효과를 보았으니 의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올려드리게 하시오.”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도 승전색을 통해 분부하였다. “왕세자(순조)가 방금 소리쳐 울면서 나아가 안부를 묻고 싶어하므로 지금 함께 나아가려 하니 신하들은 잠시 물러나 기다리도록 하시오.”

동궁이 대내로 들어가자 좌의정 심환지 등이 다시 들어왔다. 부제조 조윤대가 성향정기산을 받들고 들어오자, 이시수가 받들어 올리면서 숟가락으로 탕약을 떠 두세 숟갈을 입안에 넣었는데 넘어가기도 하고 밖으로 토해내기도 하였다. 다시 또 인삼차와 청심원을 계속 올려드렸으나 정조는 마시지 못했다. 이시수의 명에 따라 강명길이 진맥하였다. “맥도로 보아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

대신들이 모두 어찌할 줄 모르며 둘러앉아 소리쳐 울었다. 이날(28일) 유시(오후 5~7시)에 정조는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다. 곧이어 국왕의 유서를 선포하고 국새(國璽)를 왕세자(순조)에게 넘겼다. 정조는 1752년(영조 28)에 태어나 재위한 지 24년만인 1800년(정조 24)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49세의 나이에 승하한 정조의 삶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의 임금이 위생 상태가 불량한 음식을 섭취하여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정조대왕국장의궤』 중 일부, 출처 : 문화재청 정조의 국장을 치르는 반차도(班次圖)로 국장의 세부 과정을 담고 있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유전적인 요인, 그리고 임금의 옥체를 상하게 할 수 있는 음식물 섭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온몸에 종기가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치료과정에서의 잘못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했을 수 있다. 정조가 섭취한 음식물을 통한 독살설과 치료과정에서의 독살설을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종기가 발생한 근원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는 음식물 섭취를 통해 서서히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절대적인 왕권 강화를 도모하며 군사로서의 소명에 충실했던 정조의 통치술은 나름대로의 명분과 당위성을 지닌다.

탐욕에 젖은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상주의적인 왕권국가를 추구했던 그의 통치 스타일은 수원화성 건설 등의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정적들과 대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위기관리는 왕권국가의 토대를 공고히 하는 여정 속에서도 정적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신권을 압도하는 왕권 국가를 세우려했지만, 정조의 탕평책은 왕권보다 우위에 서려는 신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조 사후 정국의 주도권은 노론을 대신하여 실세가 된 왕실 외척에게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