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은 왕세자의 조기교육을 중시하였다. 보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왕세자는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교육방식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교육을 받으며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조선왕조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교차하지만,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500년이 넘는 세월을 지탱해온 조선왕조의 저력은 왕위 계승권자의 교육체계에도 깃들어 있다.

조선시대의 유교문화는 백성들의 삶속 깊숙이 스며들며 유교적인 통치이념뿐만 아니라 성리학적인 가르침을 본받으려는 풍토를 확산시켰다. 본래 유교문화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뿌리내렸지만, 백성들의 삶속에 포괄적으로 스며들지는 못했다.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했고,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천하며 임금이자 스승을 상징하는 군사君師의 책무를 담당해야만 했다. 또한 성인가학론聖人可學論을 토대로 왕세자를 교육시킴으로써 성인 군주로 거듭날 수 있는 교육체계를 갖추었다.

한 나라를 다스리려면 성리학적인 소양 외에도 국방, 외교, 경제 등 배워야 할 지식들이 방대하였기에, 조선의 왕위 계승권자는 교육의 질 못지않게 양적인 측면에서도 강도 높은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영조는 노론세력의 후원 하에 왕이 되었으나 집권 초반기에는 허수아비 임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기력해진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탕평책을 통해 불만세력의 욕구 불만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지나칠 정도로 검소한 삶을 실천했다.

점차로 영조의 권력기반은 공고해졌지만 노론 중심의 탕평책은 늘 우환거리였다. 그는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임금으로서 성군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후계자인 사도세자를 성군으로 키우려는 원대한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부왕의 뜻을 받들지 못했다. 영조의 혹독한 교육방식에 왕세자는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영조는 사랑보다는 엄한 군주의 권위와 질책으로 사도세자를 주눅들게 했다. 그래서 혹독한 후계자 교육은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자식을 망치기 쉬운 접근법으로 경계해야 한다. 부왕은 사도세자를 평가하여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할 때는 엄하게 꾸짖었다. 왕세자는 영조의 기대를 저버리고 점차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왕 영조의 지지기반은 노론이었는데, 사도세자는 소론과 가깝게 지내면서 부왕의 심기를 건드렸고 노론 계열의 대신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노론 실세들은 대리청정 중인 사도세자에게도 노론 중심의 국정 운영을 권고했으나 사도세자는 거부하였다. 그들은 사도세자를 노골적으로 음해하기 시작했고, 영조와 왕세자 간의 불편한 관계를 자극하였다. 영조의 지지기반이었던 노론 대신 소론 인사들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사도세자의 유연하지 못한 리더십도 아쉽기만 하다. 최고 지도자를 모시는 2인자는 주군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행위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1724년에 즉위하여 1776년까지 약 52년간 권좌에 머물렀던 영조의 지나친 권력욕도 사도세자의 도전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회강반차도(會講班次圖), 세자의 교육을 점검하는 회강(會講)이 열리는 모습 출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공부에 흥미를 잃은 사도세자에게 행해진 엄격한 교육의 부작용도 왕세자의 비극에 일조하였다. 오늘날에도 교육 목적의 체벌은 종종 인권침해라고 비판받으며, 때에 따라서는 법적분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당시 사도세자가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그를 수행하던 궁인들이 엄한 체벌을 받곤 했다. 교육적 효과를 도모한다는 이유로 행해졌던 체벌은 다양한 부작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교육적 체벌로 행해지는 ‘회초리’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회심리적인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

아쉽게도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이고 나서야 자신의 교육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뉘우쳤다. 또한 강압적으로 교육시키는 접근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후회하였다. 대신들은 여세를 몰아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세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영조는 신하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성군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닌 군주였으며, 사도세자와 마찬가지로 원손(정조)의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영조는 원손이 3살 때인 1754년(영조 30) 9월에 보양관을 임명했고, 이듬해에는 원손에게 『소학』과 『효경』의 초략본을 읽게 했으며, 1756년(영조 32)부터는 원손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대할 때와 달리 세손(정조)에게는 사랑으로 배려하고 격려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영특한 행동으로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부친인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에도 영조에게 반항하는 행동을 표출하지 않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영조는 세손에게는 엄하게 교육시키는 방식 대신 사랑과 헌신으로 정조의 기를 살려주었다.

정조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꾸중을 들으면 반항하기보다는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여 본질적 가치를 터득해야만 잠자리에 들 정도로 학문을 연마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영조는 때때로 세손(정조)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나, 세손은 할아버지를 원망하기는커녕 영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행동했다. 이처럼 왕위계승권자의 교육에 임하는 임금의 관심과 접근법에 따라 교육적인 효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조가 조선 후기를 빛낸 성군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천부적 재능과 노력 못지않게 영조의 사랑과 뜨거운 교육열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