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민심의 지지 위에 꽃을 피운다. 성군 정치란 계층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속에서 결실을 맺는다. 정조는 성군 정치를 표방하며 대신들과의 토론을 통해 국정현안의 해법을 모색했지만 의사소통하는 방식은 세종과 달랐다. 세종은 건국 초기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해소하고 정국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신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지만, 스스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안건이라도 가급적이면 신하들이 도출한 해법에 힘을 실어주며 앞에서 끌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주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면 살해 위협을 받으며 즉위한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씻고 훼손된 왕권을 바로 세워야 하는 혼미한 정국 속에서 신하들의 해법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하며 앞에서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난제의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신하들이나 백성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건 조성에도 만전을 기했다. 1778년(정조 2) 6월 4일 정조는 2년이 넘도록 신하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통치를 위한 큰 틀인 경장대고를 통해 국가비전을 선포하였다. “과인이 열조의 큰 유업을 이어받았기에 낮이나 밤이나 공경하고맞이했으니 군신 상하가 마땅히 서로 닦아 가는 도리를 힘써야 한다. 이에 대궐 뜰에서 고하게 된 것이다. 그 조목에는 무릇 네 가지가 있는데 민산과 인재와 융정과 재용에 관한 것이다.” 

정조실록 5권, 정조 2년(1778년) 6월 4일, 민산·인재·융정·재용에 관한 대고를 선포하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앞에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한 정조는 자칫 잘못되어 독선적인 의사결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하며,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심학의 탐구와 실천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뿐 아니라 군주와 백성의 관계에서도 늘 조심하며 약자의 처지를 헤아리는 데도 만전을 기했다. 이밖에도 정조는 부모를 섬기는 효와 형제간의 우애를 중시했고, 예의범절을 실천함으로써 서로를 존중하며 화합하고 상생하는 대인관계를 중시했다. 그러나 효 문화는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 지켜야할 덕목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가족윤리를 강조하는 인간관계는 소통을 저해할 수 있다.

인간관계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심리학과 사회학적인 이론에 근거하면서도 조직행동(경영학)의 효율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경제학과 정치학적인 이론들도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데 활동되고 있다.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마음이 편해야 상대방도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더 나아가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사서四書인 『논어』·『맹자』·『중용』·『대학』은 내적으로 자기 수양을 하고, 외적으로 타인을 새롭게 하는 대인관계를 중시한다. 사람의 본성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지만 선과 악이 혼재된 세속에서의 삶으로 인해 맑은 영혼이 오염되고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인간 본연의 밝은 본성은 빛을 잃어버리기 쉽다. 이를 극복하려면 내적인 수양을 통해 인간 본연의 밝은 덕을 널리 알리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가치를 터득해야 한다. 내적으로 자기자신을 완성해야만 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올바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정조는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이해집단들과의 소통에 만전을 기했다. 규장각의 초계문신제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정적들의 저항을 차단할 수 있는 명분을 축적하였는데, 대립관계에 있던 노론뿐만 아니라 남인이나 북인의 인물들도 선발하였고, 규장각 검서관에는 능력이 출중한 서얼 출신을 임명할 정도로 그의 인사정책은 파격적이었다.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는 열정적으로 헌신함으로써 타의 모범이 되었다. 정조는 뛰어난 학식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인간존중과 배려,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을 실천함으로써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가 추구한 배려의 리더십에는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인재육성과 소통의 중요성이 함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정조의 소통 방식은 시대의 변화를 관통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신분제의 위계질서가 엄격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신분이 낮은 평민이나 노비들도 거대한 부를 축적하며 사회적인 영향력을 확산시킬 수 있을 만큼 18세기의 조선은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회변화의 거대한 물결은 도도하게 흘러내리는 강물과 같기에, 억지로 물줄기를 바꾸려하면 부작용이 뒤따른다.

오늘날에도 대인관계에서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지도자들을 필요로 한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지닌 사람은 얼굴표정을 개선해야 하는데, 어떤 표정으로 바꿔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롤 모델을 벤치마킹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접근법도 효과적이다. 또한 유머감각이 뒷받침되면 이미지 관리의 실효성은 크게 향상된다. 인간관계에서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불편하거나 어색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고,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효과적이다. 미소짓는 얼굴표정과 유머감각이 더해지면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멋쟁이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