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탕평책은 정파를 초월하여 우수인재를 발굴하고 교육시켜 군주를 보좌하며 왕권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반면 영조의 탕평책은 지지기반인 노론을 중시하며 다른 정파의 우수인재들을 간헐적으로 영입하는 불완전한 접근법이었다. 당시 영조는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탕평책을 전개하고 싶었지만, 지지기반인 노론과 결별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었다. 영조의 탕평책은 불완전해 보이지만 정파 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왕권강화를 도모한 숙종의 환국정치보다는 진일보한 통치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왕권은 쉽사리 안정되지 못했고,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심은 위기상황에 직면했기에 신권이 왕권을 통제하기 쉬운 정치지형이 형성되었다. 숙종은 즉위하면서부터 실추된 왕권을 회복해야 하는 당면과제에 고뇌했다. 1674년(현종 15) 8월 18일 “임금의 병이 크게 위중하더니 이날 밤 해시에 창덕궁의 재려齋廬에서 승하하였다.” 현종이 급서하자 숙종은 14살의 나이에 즉위했지만 붕당세력간의 권력다툼은 지속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예론(예의범절) 논쟁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허목, 윤휴 등의 남인과 송시열, 김우명 등의 서인 세력은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숙종어필 칠언시(肅宗御筆 七言詩) 출처: 경기도박물관

정치적 혼돈 속에서 숙종은 승부수를 던졌다. 신권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병권을 개혁함으로써 왕권 중심의 통치체제의 정립을 추진하였다. 임금의 친척인 훈척들이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등 네 군문을 관리하던 관행도 해결해야만 하는 도전과제였다. 그 와중에 외척인 김석주는 1680년(숙종 6)에 경신환국을 주도하며 실세로 부상하였다. 숙종 즉위 후의 권력구도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라는 단순한 갈등관계라기보다는, 서인과 남인 간의 갈등관계 속에서 왕실의 종친과 외척의 대립이 혼재되어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인평대군의 아들이며 인조의 손자였던 복창군 이정, 복선군 이남, 복평군 이연은 삼복三福이라 불리며 효종과 현종뿐만 아니라 숙종과도 사이가 좋았다. 삼복 형제는 환관들과 결탁해 국정운영에 깊이 관여하였고, 외가인 동북 오씨와 외척인 청풍 김씨와 연대해 자신들의 힘을 키워나갔는데, 허목과 윤휴 등의 남인과도 친했다. 삼복 형제에게 집중된 권력은 숙종의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그 와중에 경신년(1680) 3월에 복선군 이남과 남인의 영수이자 영의정인 허적의 서자인 허견의 역모사건이 발생했으나 외척인 김석주와 김만기 등이 해결하였다. 경신환국으로 남인세력은 실각하고 서인이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서인 집권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숙종은 기사년인 1689년(숙종 15)에 후궁인 희빈 장씨의 생후 2개월 된 왕자를 원자로 정했다. 희빈의 모친은 희빈의 산후조리와 왕자를 보살피기 위해 궁궐을 출입했는데, 서인의 관료들은 희빈의 모친이 미천한 출신이라는 이유를 들어 가마를 타고 궁궐에 출입하는 것을 반대했다.

숙종은 왕자를 낳은 희빈의 모친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처사에 분개했고,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1688년(숙종 14) 11월 15일에 희빈의 모친을 멸시한 사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였다. 결국 나이 어린 원자 책봉에 반대했던 송시열 등 100명이 넘는 서인의 실세들이 사사되거나 유배당했다. 이를 계기로 서인은 몰락하고 남인이 조정의 중심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사환국이 단행되었다. 이처럼 숙종은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당파간의 대립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특정 당파가 오랫동안 주도권을 쥐면 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피 말리는 권력다툼 속에서 ‘오늘의 영웅이 내일의 역적’이 되는 일은 반복되었다.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조정의 요직을 차지했지만 서인과의 투쟁이 아닌, 숙종의 의지에 따라 획득된 결과였다. 그 후 임금은 인현왕후를 폐서인시키고 1690년(숙종 16) 10월 22일에 희빈 장씨를 왕비로 봉하였다. 당시 남인은 서인을 완벽하게 제압한 상태가 아니어서 붕당 간의 치열한 경쟁은 지속되었다. 왕비가 된 장씨는 방자한 행동으로 궐내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숙종은 무수리 출신의 후궁인 최씨(영조 생모)를 총해하면서 인현왕후 민씨를 폐한 일을 후회하였다. 갑술환국은 1694년(숙종 20) 폐비 민씨(인현왕후)의 복위 과정에서 서인과 달리 반대하던 남인이 화를 당한 사건을 상징한다. 설상가상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던 후궁 최씨가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남인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숙종대의 붕당정치는 임금의 의중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신권에 휘둘리던 숙종은 첨예하게 대립하던 정치적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붕당 간의 대립을 부추기며 왕권을 강화하는 불완전한 리더십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