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노비들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은 1801년(순조 1)에 결실을 맺어 왕실과 중앙각사에 소속된 6만명 이상의 내시노비가 양인으로 전환됨으로써 중앙의 공노비제는 폐지되었다. 본래 조선의 노비는 공노비와 사노비로 나뉘는데, 18세기 조선의 노비제도는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내시노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면 중앙정부의 재정운영은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노비총奴婢摠을 정액화하는 등의 조치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노비들은 때때로 도망가기도 했지만, 법적으로 공인된 속량을 통해 양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비들이 속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조선의 신분질서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에, 조선 전기에는 사족의 천첩자녀에게만 속량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노비의 자녀에게도 속량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노비들은 자유의 몸이 되려는 욕망이 강했고, 속량을 통해 양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공노비와 사노비 모두 도망가는 자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노비입안(奴婢立案), 세로 49cm, 가로 304cm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인조는 노비추쇄도감을 설치하여 도망친 노비들을 잡아들이려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정조대에도 노비추쇄관을 파견하여 도망간 노비들을 단속하였지만, 노비를 활용한 강제노동 외에도 상업의 발전과 함께 임금노동자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노비 소유의 효용 가치는 점점 약화되었다. 또한 기근이나 전염병 등으로 경제사정이 악화되면 솔거노비와 달리 외거노비는 스스로 자신의 가정을 꾸려갈 수 없어서 유랑생활 하는 자들이 증가하였고, 통신이나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노비의 주인과 연락이 두절되는 예도 많았다. 점차로 자유를 갈망하던 노비들의 불만은 고조되었고,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서양의 사상도 서울을 중심으로 스며들며 노비제도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들어놓았다.

본래 내시노비 비총제는 영조 21년인 1745년에 영남지역에서 시행된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정조대에도 지속되었다. 하지만 노비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비총에 저항하는 노비들이 증가함으로써 지방의 관청들은 할당된 노비총, 즉 노비들로부터 받아내야 하는 곡물 등의 재물을 채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779년(정조 3) 6월 14일 영남지역의 암행어사인 황승원이 정조에게 보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노비 관리가 매우 어려웠음을 집작해볼 수 있다. “시노비를 추쇄하는 폐단이 타도에 견주어 더욱 극심하니, 추쇄관을 혁파하는 것이 실로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주고 물에 빠진 것을 건져주는 혜택이 됩니다. … 비총법을 변통시키지 않는다면 폐단을 바로잡을 방도는 실로 그 길이 없으니, 한 번 이정(바로 잡아 고침)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선 건국 후 노비의 수는 점점 증가하여 16세기에는 전 국민의 40~50%에 달했지만 19세기 접어들어서는 10%에도 미치지 못했고,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으로 인해 조선의 노비제도는 붕괴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노비제도는 노비 수의 감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지체 높은 권력자의 저택에서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솔거노비가 등장하는데, 조선의 노비 중에서 솔거노비의 비중은 적었고, 노비 소유주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농장 등지에서 일하는 외거노비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상업의 발전과 더불어 신분제의 위계질서 속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려는 열망이 강해졌고, 노비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노비를 활용한 부의 축적에 몰두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노예제의 폐지는 상공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9세기의 미국 북부는 임금노동자를 활용하여 상공업을 발전시켰고, 남부지역에서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 노동자를 활용해 대규모 농장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1861년에 노예제를 반대하던 링컨 대통령이 당선되자 남북전쟁은 시작되었고, 1863년에 300만명 가량의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18세기의 조선에서 노비의 강제 노동을 활용한 농업 생산성은 상공업의 생산성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였다. 농업의 경우는 강제노동이라 하더라도 노동자의 강인한 체력에 기초한 단순노동이었기에 억압에 의해서도 일정 수준의 농업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공업의 경우에는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상품들은 높은 불량률과 상품의 품질 저하로 인해 소비자의 불만족을 유발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했다.

농업과 마찬가지로 단순노동에 기초한 공산품은 어느 정도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지만,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고급상품일수록 노동자의 숙련도와 열정, 직업 만족도 등이 충족되어야만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상공업자들은 노비를 고용한 강제노동보다는 임금노동자의 고용을 선호하였다. 임금노동자의 수요가 증가하자 노비들은 주인의 속박에서 벗어나 일한 만큼 대우받을 수 있는 직장에 취업하려는 욕망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