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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News] [42] 독과점의 상업정책을 개혁하다.
청나라가 중국대륙을 지배하던 조선 후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유교문명을 재정립하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정조는 피폐해진 민생을 챙기며 이용후생利用厚生을 통해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개선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백성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이용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3-26
[종합 News] [41]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임진왜란 이후 서얼을 차대하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부각된 것은, 전란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고갈되고 백성들의 궁핍한 삶이 확산된 시대적인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권위주의보다는 현실적인 난제를 해결해줄 실용적인 접근이 부각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3-26
[종합 News] [40] 서얼 허통과 차별금지
조선의 권력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서얼의 관직 진출을 제한하였다. 본래 사대부의 양인 첩의 소생은 서자, 사대부의 천민 첩의 소생은 얼자로 불렸다. 서얼은 서자와 얼자를 통칭하는 용어로서 조선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특별한 차별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교수   2024-03-13
[종합 News] [39] 노비제도의 근간이 흔들리다.
정조는 노비들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은 1801년(순조 1)에 결실을 맺어 왕실과 중앙각사에 소속된 6만명 이상의 내시노비가 양인으로 전환됨으로써 중앙의 공노비제는 폐지되었다. 본래 조선의 노비는 공노비와 사노비로 나뉘는데, 18세기 조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교수   2024-03-13
[종합 News] [38]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라.
정조가 추진했던 개혁정치가 19세기에도 지속되었다면 조선의 국운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성리학에 심취해 있던 기득권 세력들은 정조가 서거하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며 정조의 치적들을 지워버렸고, 조선의 국운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약용은 20대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교수   2024-03-13
[종합 News] [37]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개혁정치
정조 집권기인 18세기는 삼정의 문란과 농촌사회의 동요, 상업의 발전과 신분질서의 혼란 등이 중첩되면서 유교국가의 정통성이 위협받던 시기였다. 기득권 세력은 그동안 누려왔던 특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양인과 하층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확대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2-21
[종합 News] [36] 정파를 초월한 정조의 탕평책
반복되는 피의 숙청으로 말미암아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신하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당쟁의 소용돌이는 조선 사회의 응집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결국 특정 정치세력을 희생시켜 왕권을 강화했던 숙종의 통치술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유능한 지식인들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2-21
[종합 News] [35] 갈등을 증폭시킨 숙종의 환국정치
정조의 탕평책은 정파를 초월하여 우수인재를 발굴하고 교육시켜 군주를 보좌하며 왕권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반면 영조의 탕평책은 지지기반인 노론을 중시하며 다른 정파의 우수인재들을 간헐적으로 영입하는 불완전한 접근법이었다. 당시 영조는 특정 정파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2-21
[종합 News] [34] 정조의 변혁적 리더십
정조와 핵심 참모의 관계는 CEO를 모시는 비서의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비서는 숙련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상사의 지시가 미치지 않는 경우에도 책임을 다해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문제에 접근하는 판단능력이 뛰어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2-21
[종합 News] [33] 참모진의 충성을 이끌어내다.
경희궁의 숭정문에서 즉위한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했던 간신들이 자신마저 죽이려 했기에 권력기반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철저하게 보호해줄 핵심 참모들의 충성을 이끌어내야만 했다. 1776년(즉위년) 3월 13일에는 홍국영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2-08
[종합 News] [32] 초계문신제와 인재 양성
정조는 즉위 후에 규장각을 창덕궁 후원의 북쪽에 세우고 제학·직제학·직각·대교 등의 관원을 두었다. 본래 창덕궁 후원은 임금과 왕실 가족의 휴식공간으로 조성되었지만, 정조는 초계문신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왕실 정원 내에 규장각을 설치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2-08
[종합 News] [31] 사회 변화를 주도한 실학사상
신분제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며 실사구시를 내세운 실학사상은 18세기의 조선을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조는 성리학에 정통한 학자군주였지만 실학의 가치를 접목함으로써 난제 해법 도출에 집중했다. 또한 실학을 경학의 본질로 인식함으로써 정조는 무기력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30
[종합 News] [30] 독단적 의사결정을 경계하라
권력이란 민심의 지지 위에 꽃을 피운다. 성군 정치란 계층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속에서 결실을 맺는다. 정조는 성군 정치를 표방하며 대신들과의 토론을 통해 국정현안의 해법을 모색했지만 의사소통하는 방식은 세종과 달랐다. 세종은 건국 초기의 어수선한 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30
[종합 News] [29] 정조의 어찰 정치
18세기의 조선은 붕당정치의 실세들이 군주의 권위 위에 군림하려고 몸부림치던 시기였다. 정조는 탕평정치를 표방하며 각 정파의 수장들과 소통하는 데 만전을 기했고, 공개토론장에서는 반대세력의 저항을 힘으로 억압하는 접근법을 꺼렸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대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24
[종합 News] [28] 서학 연구자들과도 소통하다.
정조 집권 후반기는 서양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실용적인 학풍을 지닌 지식인들은 서학을 수용하여 조선 사회의 단점들을 개선하고자 했다. 정조 또한 선진화된 서양의 과학기술에 큰 감명을 받았고, 조선사회의 난제인 농업과 상업 등의 문제를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24
[종합 News] [27] 대동사회를 향한 소통법
조선의 지식인들은 ‘대동사회’를 염원했다. 아울러 선비들이 중시했던 노자의 『도덕경』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중시한다. 『도덕경』은 거짓됨과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런 순리를 중시하며, 큰 것과 작은 것, 높은 것과 낮은 것처럼 구별하는 행위를 경계한다.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19
[종합 News] [26] 영조의 왕세자 교육
조선 왕실은 왕세자의 조기교육을 중시하였다. 보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왕세자는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교육방식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교육을 받으며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조선왕조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교차하지만, 온갖 시련에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19
[종합 News] [25] 未完으로 끝난 정조의 개혁정치
정조를 치료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지속되었지만, 6월 27일 오후에는 왕실 가족들과 대신들, 그리고 어의들과 지방의 의원들도 임금이 회복될 수 없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당일에도 연훈방 처방에 대한 찬반 의견은 팽팽했다. 연훈방은 종기의 치료에는 효과적이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05
[종합 News] [24] 정조의 독살설과 연훈방 처방
정조의 병세는 1800년(정조 24) 6월에 급격히 악화되었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6월 중순경부터 임금의 병세를 호전시키기 위해 내의원의 관리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년 6월 14일 정조는 내의원 제조 서용보를 편전으로 불러 진찰을 받았다. 이미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4-01-05
[종합 News] [23] 청나라와 일본과의 균형외교
대청외교의 중요성은 다른 시기와 달리 정조대에 특별하게 많은 연행록이 발간되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사절단이 참관한 연희의 종류는 연극류, 잡기류, 수희류, 폭죽등희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잡기류는 오늘날의 서커스와 유사한 형태로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교수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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