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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News] [23] 청나라와 일본과의 균형외교
대청외교의 중요성은 다른 시기와 달리 정조대에 특별하게 많은 연행록이 발간되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사절단이 참관한 연희의 종류는 연극류, 잡기류, 수희류, 폭죽등희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잡기류는 오늘날의 서커스와 유사한 형태로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교수   2023-11-09
[종합 News] [22] 실리를 추구한 정조의 외교전략
정조는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청나라를 방문하는 관리들은 조선에서 필요로 하는 신지식과 정보를 수집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대륙을 지배하게 되면서 청의 황제를 비롯한 지배계층은 대내외적으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11-07
[종합 News] [21] 가뭄과 전염병을 극복하라
조선의 왕들은 가뭄이나 물난리로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백성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2년 7월 17일에 즉위했는데, 비가 내린 다음날(18일)을 『태조실록』에 기록했을 만큼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10-19
[종합 News] [20] 홍국영의 숙위소 혁파
삼불필지설三不必知說은 정조의 즉위가 험난했음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1775년(영조 51) 11월 20일 영조는 집경당에서 대신들을 초대하여 『어제자성편』, 『경세문답』을 진강하도록 명하였다. 동궁(정조)과 영돈녕부사 김양택, 영의정 한익모, 판부사 이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10-19
[종합 News] [19] 보복살인에 대한 관대한 판결
정조의 판결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엄격한 법의 적용보다는 윤리적인 관점에서 합당한 명분이 있으면 감형하는 판결을 선호했다. 1791년(정조 15) 9월 20일 호서의 살인사건 죄수인 김계손 형제에 대한 충청감사의 보고내용을 살펴보자. “그들의 아비가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10-04
[종합 News] [18] 유교윤리를 중시한 형벌제도
조선은 건국 후 대명률에 기초하여 형법의 토대를 마련했다. 1485년(성종 16)에 반포된 은 명나라 법률에 기초하여 조선의 지리와 문화적 토대를 고려하여 정립되었다. 유교적 전통은 가족관계를 중시하며,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위계질서가 바로 서지 못하면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9-26
[종합 News] [17] 화성 신도시 프로젝트
해마다 한양의 궁궐에서 출발하여 수원부의 현륭원을 참배하려면 한강을 건너야 했다. 1789년(정조 13) 12월에 정조는 한강에 부교를 놓는 일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주교사의 설치를 명했다. 배다리에 대한 큰 그림은 정조가 제시하였고, 설치를 위한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9-04
[종합 News] [16] 정조의 현륭원 참배
사도세자가 처형당한 직접적인 계기는 나경언의 고변사건에서 비롯되었다. 1762년(영조 38) 5월에 발생한 이 사건은 사도세자의 비행과 변란이 눈앞에 닥쳐왔음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세자를 음해할 목적으로 벌인 사건임이 드러났다. 당시 영조는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8-28
[종합 News] [15] 개혁정치를 뒷받침한 장용영
장용영에 관한 『정조실록』의 기록은 1787년(정조 11) 7월 27일에 등장한다. 당일 정조는 춘당대에서 장용영의 활쏘기 시험을 행하였고, 1788년(정조 12) 2월 10일에는 장용영 군병 중에 부모의 상을 당한 자에게는 휴가 1백 일을 주고, 빈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8-08
[종합 News] [14] 국방개혁으로 왕권을 강화하다.
영조 집권기만 해도 중앙의 오군영은 임금의 통제보다는 무인들이 주도적으로 관리하며 영향력 있는 대신들과 결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1778년(정조 2) 6월에 발표한 ‘경장대고’를 통해 불필요한 군영을 통폐합하고 임금이 주도적으로 군대를 통솔하기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8-01
[종합 News] [13] 국가재정의 효율적 관리
조선의 백성들은 다양한 종류의 세금을 납부했으며, 국가는 국토방위와 백성들을 구제하는 목적 외에도 다양한 비용 지출을 중앙정부에서 통제하였다. 조선시대의 국가재원은 전세, 군역, 공납, 잡세, 잡역 등으로 마련되었다. 당시의 육상과 해상 교통체계는 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7-25
[종합 News] [12] 난세를 헤쳐 나가는 정조의 리더십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집권 후반기에도 사도세자의 완전한 명예회복을 추구했지만 반대세력의 저항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옹호했던 김종수 외에도 자신의 즉위에 기여한 서명선과 정민시 등을 중용하고 반대세력인 정후겸, 홍인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7-17
[종합 News] [11] 정적을 제거하는 타이밍
조선 최고의 권력자였던 정조가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신하들과 국정운영을 함께 한다는 것은 민주화된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경지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노출시켜서는 안 되며,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아랫사람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7-12
[종합 News] [10] 정치세력을 관리하는 통찰력
후계자 교육에 전심전력한 선왕의 보살핌과 자신의 천부적 재능,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계발 덕에 정조는 성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모름지기 성군이란 천부적인 재능과 빈틈없는 자기계발 및 체계적인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탄생할 수 있다. 영조는 『소학』과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7-03
[종합 News] [9] 역사적 민족의식 고취
18세기 후반기의 조선은 정치, 경제, 국방, 신분제도 등에서 다양한 갈등이 상존했던 시기였다. 삼정의 문란과 농민의 분화, 상업의 발전과 하층민의 불만 등이 확산되며 조선사회를 지탱해주던 유교질서가 무너지고 있었다. 정조는 산적한 난제들 중에서 국가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6-27
[종합 News] [8] 사도세자의 명예회복
정조가 왕세자에 있을 때에 조재한이 한 부류의 불평불만을 일삼는 무리들과 함께 임오년의 의리를 가장하고서 몰래 요망한 환관 이흥록·김수현 등과 결탁한 것이 임금에게 들렸는데, 이흥록 등이 임금이 후원에서 거니는 것을 틈타 오만 가지로 유혹하고 위협하다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6-16
[종합 News] [7] 왕권의 정통성과 위기관리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후 정국은 소용돌이쳤다.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되면 왕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한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은 세손(정조)이 보위를 물려받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았을 뿐만 아니라 세손을 죽이려 했다. 장안에는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6-12
[종합 News] [6] 사도세자의 비극
영조는 사도세자의 비행을 확인하고는 장안의 백성들에게 각기 빚으로 준 것을 말하도록 명해 호조·혜청 및 병조로 하여금 갚아주라 명하였다. 부왕이 사도세자의 큰 빚을 대신 갚아주었다는 점에서 나경언의 고변서는 정치적인 음모에 의해 꾸며진 사건으로만 바라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6-07
[종합 News] [5] 사도세자, 영조의 기대를 저버리다
1735년(영조 11) 1월 21일 영빈 이씨가 원자(사도세자)를 집복헌에서 낳았다. 그때 나라에서 오랫동안 왕세자가 없으니 사람들이 모두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온 나라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번갈아 하례하는 말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5-24
[종합 News] [4] 정조의 왕위계승 교육
정조는 1752년(영조 28) 9월 22일에 태어났고, 8세 때인 1759년(영조 35)에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으며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가르침에 충실했고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만큼 영특했다. 그러나 11살 때인 1762년
이영관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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